9월의 시
2020. 9. 14. 13:47ㆍ좋은 글
9월이 오면 - 김향기
웃자라던 기세를 접는
나무며 곡식들,
잎마다 두텁게 살이 찌기 시작하고
맑아진 강물에 비친 그림자도 묵직하다.
풀벌레 노래 소리
낮고 낮게 신호 보내면
목청 높던 매미들도 서둘러 떠나고
들판의 열매들마다 속살 채우기 바쁘다.
하늘이 높아질수록
사람도 생각 깊어져
한줄기 바람결에서 깨달음을 얻을 줄 알고,
스스로 철들어가며 여물어 가는 9월.
9월이 -나태주
9월이
지구의 북반구 위에
머물러 있는 동안
사과는 사과나무 가지위에서 익고
대추는 대추나무 가지위에서 익고
너는
내 가슴속에 들어와 익는다
9월이
지구의 북반구 위에서
서서히 물러가는 동안
사과는
사과나무 가지를 떠나야하고
너는
내 가슴속을 떠나야 한다
9월의 시 - 문병란
9월이 오면
해변에선 벌써
이별이 시작된다
나무들은 모두
무성한 여름을 벗고
제자리에 돌아와
호올로 선다
누군가 먼길 떠나는 준비를 하는
저녁, 가로수들은 일렬로 서서
기도를 마친 여인처럼
고개를 떨군다
울타리에 매달려
전별을 고하던 나팔꽃도
때묻은 손수건을 흔들고
플라타너스 넓은 잎들은
무성했던 여름 허영의 옷을 벗는다
후회는 이미 늦어버린 시간
먼 항구에선
벌써 이별이 시작되고
준비되지 않은 마음
눈물에 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