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 천상병

2020. 8. 8. 21:14좋은 글

아침 깨니

부실부실 가랑비 내린다.

자는 마누라 지갑을 뒤져

백오십 원을 훔쳐

아침 해장으로 나간다.

 

막걸리 한 잔 내 속을 지지면

어찌 이리도 기분이 좋으냐?

가방들고 지나는 학생들이

그렇게도 싱싱하게 보이고

나의 늙음은 그저 노인 같다

비오는 아침의 이 신선감을

나는 어이 표현하리오?

그저 사는 대로 살다가

깨끗이 눈감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