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에 선 나무의 전언(傳言) - 이유경
2019. 12. 20. 11:53ㆍ좋은 글
겨울 숲에 선 나무의 전언(傳言) - 이유경
우리와 함께 살았던 잎들은 모두 저승 멀리 가 있단다
그때 흘렀던 냇물 바다 어디선가 지금 흘러가 있듯이
수없이 죽어가 태어나는 것 있으면 흙이나 물에서뿐
썩는 행기그리운 나이에 닿아 우리 여기 숨어
먼저 간 세월 한 올씩 헤기로 하자 그렇게 하자
차가운 비바람 몇날 며칠 밤 저 고사리밭 쑤신 다음
몸살난 뿌리 굵은 새순 내밀 때 우린 악기처럼 만나서
잎들 위에 다른 잎들 썩고또 새잎 떨어져 맨 밑에
저승 천지 적막 죽은 짐승같이 누었음 분명하지만
다들 한알 모래 같은 비료로 돌아가느니 노래하고 싶지
꿈의 허무 서러운 기다림 씻겨 가 버린 나이 되면
우리 사랑하던 사람들 넋이나 되자 그렇게 되자
안개 자욱한 봄날 아침 그들 떠나온 도시와 길을 향해
있어도 없어도 좋은 이름으로 우리 나란히 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