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27. 21:14ㆍ좋은 글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 영 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하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1. 김영랑 '모란이 피기 까지는'에 대하여
1934년 4월 『문학(文學)』 3호에 발표되었으며, 이듬해 시문학사(詩文學社)에서 간행된 『영랑시집』에 수록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저자로서는 새로운 변형이라 할 수 있으며, 모란이 피기까지의 ‘기다림’과 모란이 떨어져버린 뒤의 ‘절망감’이라는 이중적 갈등을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1) '모든 것은 재생하기 때문에 모란이 피는 날과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날'전부 보람이 있는 날이라는 것을 화자는 깨달고 있는 것인가요?
- 김영랑은 모란을 봄의 절정, 즉 봄의 모든 것으로 상징화 하면서 삶의 보람, 삶의 목적을, 이 시에 귀일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이 시는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겠다는 시인의 '모란'에 대한 애착과 집념을 강하게 보여줍니다(화자는 깨달고 있습니다).
2) '모란이 지면 모든 보람이 무너지고 필때까지 마냥 섭섭해서 운다고 하는데' 과연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시간도 보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 쉽게 계획하고, 쉽게 좌절하며, 포기하는 듯한, 오늘 우리의 현실 속의 인생들 중에서.. 특히 이 시는 많은 암시를 주고 있습니다. 꽃은 아름다움이요, 희망이요, 밝음이지만,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고통과 좌절과 어둠을 간과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설명해 주고 있으며, '고통과 좌절과 어둠이 있다 하더라도 모란이 피기까지 기다리겠다는 마음을 그렸습니다.
- 그리고 기다림이 무산되어 버리는 순간, 다가오는 절망감을 시인은 ‘설움’의 감정 속에 농축시키고 있는데, 마지막 행에서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겠다는 화자의 의지는 절망을 절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