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부론 법천사지 폐사지를 가다

2020. 5. 12. 21:57원주

원주시 부론면 남한강 흥원창을 지나 부론면사무소쪽으로 가다가 좌회전해서 1KM 정도 가면 패어가는 보리밭을 지나 우측으로 야트막한 구릉아래 법천사 폐사지가 보인다.    

 

 

법천사는 신라말에 세워져 고려에 이르러 크게 중창한 사찰이다. 흩어진 기초석을 볼 때 대단한 규모임을 알 수있다.

 

 

사적 제466호.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문선(東文選)』 등의 문헌에 전하는 바에 의하면, 법천사(法泉寺)는 신라 말인 8세기에 산지가람(山地伽藍)으로 세워져 고려시대에 대대적으로 중창(重創)된 사찰이다. 화엄종(華嚴宗)과 더불어 고려시대 양대 종단이었던 법상종(法相宗)의 고승 정현(鼎賢)이 주지를 맡아 법상종 사찰로 번성하였다. 특히 지광국사(智光國師)가 초년(初年)에 수학하고 은퇴하여 머물다 입적(入寂)한 곳이므로, 이 시기가 전성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초기에 유방선(柳方善)이 이곳에서 강학(講學)하였으며, 권람, 한명회, 강효문, 서거정 등의 학자들이 여기 모여 시를 읊고 시문을 남겼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전소된 뒤 중창되지 못하였다. 1982년 11월 3일 강원도 시도기념물 제48호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 8월 31일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66호로 승격되었다.

 

현재 절터에는 금당(金堂) 터의 북쪽인 탑비전지(塔碑殿址)와 1086년 건립된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국보 제59호), 불상광배(佛像光背), 불두(佛頭), 연화문대석(蓮華紋臺石), 용두(龍頭), 석탑재(石塔材) 등이 있고 절터 남쪽 약 800m 지점에는 높이 280㎝로 완전한 형태의 신라시대 당간지주(幢竿支柱)가 남아있다. 옛 법천사 경내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주변 일대에는 민가가 들어서거나 농경지로 변했지만 장대석 석축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승탑[浮屠] 가운데 최대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은 탑비와 나란히 있었으나, 일제 초기 오사카(大阪)로 반출되어 비석만 홀로 남게 되었다. 이 탑은 후에 반환되어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한국전쟁 당시 포탄을 맞아 탑신 이상이 대파되었다가 복원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용산으로 이전할 당시 옮겨가지 않아 2013년 현재, 국립고궁박물관 우측 공터에 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5차례 시행된 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기의 건물지 19동과 우물지 3개소, 석축 및 담장유구, 계단지, 금동불입상, 연화대석, 각종 기와류 및 자기류 등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재)강원고고문화재연구원이 시행한 2012년 발굴조사에서는 법천사가 가장 번창했던 시기인 고려 중기에 사용되었던 기와류, 자기류, 동전 등이 출토되었으나, 폐사 시기로 추정되는 임진왜란을 전후로 한 조선시대 유물은 거의 출토되지 않았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083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하였다.

 

 

법천사지 발굴 및 복원을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느티나무 고목이 금당터를 지켜주는 듯 하다.

 

 

 

 

 

금당터 뒤쪽으로 오르면  국보 제59호 지광국사탑비가 그 위용을 드러낸다.

 

 

지광국사는 고려 문종이 스승으로 모신 최고의 승려였다. 87세에 법천사에서 입적하니 탑과 탑비를 세워 그를 기렸다.

법천사는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초기 남한강 수운이 번창하여 흥원창응 중심으로 많은 물건과 사람들의 왕래가 많을 때  이 일대의 중심 사찰이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지광국사탑은 고려 1085년 탑비와 함께 세워졌는데 일제에 의해 일본으로 옮겨졌다가 돌아왔으나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현재 국립고궁박물관 마당에 위치해 있다. 기구한 운명의 탑은 2021년경 법천사지로 돌아올 예정이라고 한다.

 

경복궁 내 고궁박물관에 위치하고 있다.

 

다람쥐 한마리도 탑비 주변을 오가고 있다.

 

 

탑비 뒷산은 연분홍 철쭉이 화사하다.

 

 

내려가는길 할미꽃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조선 중기에 들어 강을 이용한 수운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흥원창도 쇠퇴하여지고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사찰들도 복구될 기반을 잃은 것으로 추측된다.  원주지역에는 법천사지 외에도 섬강변의 흥법사지, 법천사지와 가까운 곳에 거돈사지, 귀래 미륵산 아래에 황산사지 등의 폐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