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15. 12:00ㆍ강원도
진부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상원사입구에 내렸다. 월정사, 상원사를 찾는 많은 탐방객으로 인해 차량지체가 심하다.
그러나 가을이 내려 앉은 상원사 일대는 단풍색깔에 화사하다.
번뇌가 사라지는 길을 따라 상원사에 오른다.
단풍은 푸른 잎들과 어우러질 때 더 아름다운 것 같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에 위치한 상원사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 오대산은 중국의 오대산처럼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자리’로 알려져 있다. 신라 신문왕의 아들인 효명왕자가 오대산에 들어와 차를 달여 문수보살에게 공양을 올리다가 서라벌로 돌아와 왕위에 오르니 효소왕이었다. 그는 재위 4년때인 696년에 지금의 상원사터에 ‘진여원(眞如阮)’을 창건하여 문수보살상(문수동자좌상)을 봉안했고 20년 후에는 동종(국보 제36호)을 조성했다. 한강의 발원지인 ‘우통수’가 인근에 위치하기도 한 상원사는 문수보살의 가피(加被) 영험이 전하는 기도도량으로 이름이 높다. 조선시대 세조가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진여원을 중창하고 문수보살상을 조성해 원찰(願刹)로 삼은 이야기와 효명왕자의 설화는 지금도 생생하게 대중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신문왕의 두 왕자 보천과 효명왕자는 일찍이 세속 일에 뜻을 두지 않고 수행자로 살기 위해 오대산으로 향했다. “우리 형제 이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평생 수행하며 생사해탈을 이뤄보자.” “네, 형님.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순간이고 허망한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오대산에서 자연을 수행의 도반으로 삼아 반드시 견성해 윤회의 사슬을 끊겠다고 발원을 했습니다.”
두 형제가 오대산에 이르렀다. 갑자기 땅에서 연꽃이 피어오르며 형 보천이 있던 자리에 암자가 지어졌다. 보천왕자가 말했다. “나는 이 암자이름을 보천암이라 정할 것이네.” 말이 끝나자 암자의 현판에는 ‘보천암(寶川庵)’이라는 현판이 걸렸다.
보천암에서 남쪽인 효명왕자가 있던 곳에도 연꽃이 피어났다. “형님, 제가 기거할 암자는 ‘효명암(孝明庵)’이라 이름 짓겠습니다.” 그러자 역시 효명암의 현판이 암자에 걸렸다. 두 형제는 아무 부족함 없이 오로지 일심으로 생사해탈을 위해 정진에 정진을 할 따름이었다.
하루는 두 형제가 오대산 봉우리에 올라갔다. 그런데 동쪽 편 만월산에 1만의 관세음보살 진신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아, 황홀하구나. 우리의 기도가 관세음보살님을 감동시켰나보다. 이렇게 우리 앞에 나타나 주시니 말이야.”
두 형제는 다시 남쪽 기란산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1만의 지상보살이 나타났다. 서쪽 장령산에는 1만의 대세지보살님이, 북쪽 상왕산에는 500나한이 나타났다. 가운데인 중앙의 지로산에는 1만의 문수보살이 나타났다. 환희심에 경탄한 두 형제는 현재의 상원사(진여원)에서 매일 문수보살에게 참배하고 예를 올렸다. 문수보살은 36가지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하다가, 다시 수백, 수천의 형상으로 나타났다. 두 형제는 감로수를 길러 차를 달여 정성껏 기도를 올렸다.
두 왕자가 떠난 신라 왕실에는 권좌를 둘러싼 골육상쟁이 벌어졌다. 신문왕의 아우는 왕의 두 왕자가 세속의 일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자 마치 권력을 잡은 것처럼 세력을 규합하며 왕위를 넘보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신하들은 오대산에서 수행하고 있는 두 왕자들을 왕위에 모시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하여 군사 500을 거느리고 오대산으로 향했다. 이 사실을 안 형 보천왕자는 자리를 피해 버렸다. 신하들은 하는 수 없이 차선책으로 효명왕자에게 간청하여 왕위에 오르게 하니 그가 바로 효소왕이 되었다.
조선 제7대 임금 세조가 피부병으로 고생을 하다가 오대산 상원사의 영험소식을 들었다.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내 병을 고쳐야 하겠다. 내 오대산 적멸보궁으로 갈 것이니 차비를 하도록 하여라.”
산 넘고 강 건너 굽이굽이 행렬을 지은 어가(御駕)가 보름여 만에 상원사에 도착했다. “아, 피곤하구나. 어디 가서 좀 씻어야겠어. 여봐라, 행렬을 물려라. 짐은 저기 아래에 혼자 가서 목욕을 해야겠다.”
세조는 계곡으로 내려가 몸을 담갔다. “아, 시원하다. 그런데 어디 등 좀 밀어 줄 사람 없나.” 신하들의 접근을 금지한 터라 인근에는 인적이 없었다. 때마침 지나가는 동자가 있어 세조는 반갑게 말을 걸었다.
“얘야. 이리 와서 내 등 좀 밀어주지 않으렴.”
“네, 그렇게 하지요.”
동자는 계곡으로 내려와 임금의 등을 쓱쓱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이쿠, 시원하구나.” 세조는 오랜 여행으로 고단한 몸을 맡기니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는 듯 했다.” 세조는 자신이 피부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동자에게 다짐을 받으려는 듯 말을 걸었다.
“얘야, 너 어디 가서 피부병에 걸린 임금님의 등을 씻어 주었다는 말을 하면 안된다. 알겠지?” 그러자 동자도 대답했다. “네, 임금님. 그런데 저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임금은 물었다. “그것이 무엇이냐?” 동자는 등 뒤에서 또렷또렷 말했다.
“임금님께서는 어디 가서 오대산에 갔더니 문수동자가 등을 씻어주었다는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순간 세조는 깜짝 놀라 등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동자는 간 데 없고 피부병으로 진물이 범벅이 되었던 자신의 몸은 백옥같이 치료돼 있었다.
“내가 문수보살님을 친견하고 가피를 받았구나. 문수보살님 감사합니다.”
세조는 감동하여 화공을 불러 자신이 친견했던 문수보살을 그리게 하고, 그 모습대로 목조각 상을 만들어 상원사에 봉안하게 했다. 그 보살상이 현재 상원사에 봉안돼 있는 상원사 문수동자좌상(국보 제221호)이다.
세조는 친견했던 문수보살을 그리기 위해 상원사에 많은 화공을 불렀는데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그때 누더기를 걸친 노스님이 나타나 말했다. “소승이 한번 그려보겠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림을 그려 보셨는지요?” “네, 출가 전 조금 붓을 잡아 본 적이 있으니, 제가 그리는 문수보살님과 전하께서 친견한 문수보살님이 어떤지 살펴 주십시오.”
세조는 스님이 너무나 자신이 본 것과 똑같아 물었다. “스님은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그러자 스님은 “영산회상에서 왔습니다”라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고 한다.
상원사에는 문수동자상을 모신 법당아래 두 마리의 고양이상이 있다. 이곳에도 세조임금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한다. 상원사에서 피부병을 고친 세조가 상원사를 참배하기 위해 법당으로 향했다. 그때 고양이 두 마리가 세조의 옷 소매를 물고 법당으로 끌어당겼다.
“이게 무슨 회괴한 일인가?”
세조는 황당해하며 법당을 뒤지게 했다. 그러자 법당 마루 아래에 임금을 살해하려고 한 자객이 숨어 있었다. 고양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세조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고양이 석상을 세웠다. 상원사 주지스님에게는 고양이 석상을 잘 관리하라는 의미에서 상원사를 중심으로 사방 80리 땅을 하사했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이 석상이 세조와 관련있는 고양이상인 것 같다.
상원사 동종(上院寺 銅鐘)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36호로 지정되었다.
지금 달려있는 종은 복제품이라고 한다.
동종 앞에 황금봉황이 새워져 있다.
꽃잎이 작은 산국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