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 이화영
2019. 7. 8. 21:19ㆍ좋은 글
능소화
이화영
둑방길 지나는데 시멘트 담벼락 움켜쥐고 능소화가 피었다
우주 한 귀퉁이를 휘어 감고 오르는 본능적인 꽃
여름 내 폭염마저 흔들어 놓고 갈 저 주황빛 웃음이 치명적이다
더 이상 기다림은 거부하듯 입술 언저리 말아 올리며 목젖까지 보이는 헤픈 년
그때도 7월이었지
그 애랑 들렀던 강촌 민박 덜렁거리는 간판아래
손바닥만 한 화단 오만하게 뒤틀려 등나무를 타고 오르던
꽃이 너무 환해 손으로 가리키자
그 애 입에서 꽃 이름이 입술과 같이 튀어나왔다
능.소.화
생장이 빠른 것에 비해 줄기가 약해 해마다
할아버지가 뒤뜰에서 대나무를 베어와 버팀목을 만들어 주었다는
설명도 같이 피어올랐지
등을 켠 꽃잎마다 이별을 베어 물고 고른 숨 내 쉬지만
움켜쥔 손톱 멍 자국이 가실 때쯤이면
다시 피 멍이 든다
그리움만큼이나 길어진 모가지
한차례 웃비* 지나자 선혈 쏟듯 뚝뚝 낭자하게 진 모습에
한동안 그 애를 움켜쥐고 있던 내 손아귀가 맥없이 풀린다
내 손이 허공에 들린 듯하다
꽃물 든 이 병病,
남은 여름이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