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6. 17:51ㆍ서울
홍릉수목원 가는 길에 영휘원, 숭인원이 있다.
사적 제361호. 지정면적 5만 5015㎡. 한 묘역 안에 영휘원과 숭인원이 있다. 이곳에는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閔氏)의 능인 홍릉(洪陵)이 있었다. 1919년 고종이 죽었을 때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금곡리(현 남양주시 금곡동)로 천장(遷葬: 묘를 옮김.)되었다. 이런 연유로 이곳은 ‘홍릉’이라 불리고 있다.
영휘원은 조선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사친(私親)인 순헌귀비 엄씨의 원소(園所: 왕가 산소의 다른 이름)이다. 순헌귀비는 증찬성 진삼(鎭三)의 딸로 1854년(철종 5)에 태어나 1859년에 입궁해 민비가 을미사변으로 시해당하자 아관파천(俄館播遷) 때 고종을 시봉(侍奉)하였으며, 1897년 영왕을 낳고 1903년 귀비로 책봉되었다.
엄귀비는 양정의숙·진명여학교·명신여학교의 설립에 참여하는 등 근대 여성교육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1911년 7월에 죽었다. 같은 해 8월에 안장하고 원호(園號)를 영휘라고 하였으며, 위패는 덕수궁 영복당(永福堂)에 봉안되었다가 경복궁 서북 측에 있는 칠궁(七宮)으로 이안(移安)되었다.
숭인원은 영친왕과 이방자(李方子) 사이에서 태어난 진(晋)의 원소이다. 진은 1921년 8월에 태어나 그 이듬해 5월에 죽었다.
두 원의 묘역시설로는 곡장(曲牆: 무덤 뒤에 둘러싼 작은 담)·상설(象設, 石虎·石馬)·혼유석(魂遊石)·장명등(長明燈)·망주석(望柱石)·문인석(文人石)·무인석(武人石)·석마(石馬)·홍살문(紅箭門)·정자각(丁字閣)·비각(碑閣)·제실(祭室)·우물[靈泉]·사초지(莎草地: 오래 되거나 허물어진 곳을 떼로 잘 입혀 다듬은 곳) 등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
담장 밖 북쪽에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관(世宗大王紀念事業會館)이 있으며, 구영릉(舊英陵, 서울 서초구 內谷洞 獻仁陵)에서 수습해온 신도비(神道碑)와 능호석(陵護石) 등이 전시되어 있다.
<다음백과 발췌>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37857
우측에 숭인원, 좌측에 영휘원이 자리잡고 있다.
숭인원은 의민황태자 영친왕와 의민황태자비 이방자의 첫째 아들 이진 원손의 원이다. 원은 왕의 사친(후궁,왕족),왕세자,황태자 등의 무덤을 이르는 말이고 한다.
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이곳은 영휘원이다. 조선시대 마지막을 기록한 인물 들이다.
묘역은 깨끗하게 관리되어있고, 찾는 이는 드물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관 앞을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