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규 - 비 내리는 바다

2020. 4. 14. 23:28좋은 글

 

종일을 두고 비 내리는 바다를 본다.
하루도 젖지 않으면 살 수 없으므로
오늘도 젖어서 함께 젖는 바다를 본다.
물 묻은 발자국을 지우며 따라 가는 해안선
고삐를 풀고 파도는 더 젖지 않으려고 달려오지만
길게 돌아누운 백사장은 아무 소용도 없다.

 


젖어 있지 않고서는 시들어버리는 이 풍진세상
비우고 나면 이내 차오르는 안개빛 우울
속절없이 젖어서 빗소리로 떠도는 삶의 자리에
씻겨져 내리는 하늘로 더 멀리 나가 앉는 수평선
멀리 더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우주의 가슴 가득히
하루도 젖지않고는 살 수 없으므로
허기지도록 비내리는 바다는 종일을 적신다.